
소년이 온다는 5·18 광주를 배경으로 한 한강의 소설로, 학살의 기억과 트라우마가 사람들의 몸과 일상에 어떻게 남는지를 섬세하게 그린 작품. 역사적 폭력을 뇌과학·심리학과 함께 해석하며, 오늘을 사는 우리가 ‘기억’과 ‘생존’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것인지 묻는다.
1. ‘소년이 온다’ 책 소개 – 한강이 광주를 다시 불러낸 이유
『소년이 온다』는 한강이 2014년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다. 소설의 영어 제목은 Human Acts로 번역되어 해외에서 먼저 큰 주목을 받았고, 한강이 국제적으로 “역사적 폭력과 기억을 다루는 작가”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동호’라는 소년이 있다. 하지만 『소년이 온다』는 한 명의 주인공이 영웅처럼 사건을 이끈다는 구조가 아니다.
동호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사람들 – 시신을 수습하던 친구 정미, 도서관에서 유인물을 찍던 출판사 직원, 고문을 견딘 후 살아남은 이들, 그리고 오래 뒤에야 그 사건을 다시 쓰는 ‘작가’까지 – 각 장마다 화자가 바뀌며 같은 시간대를 다른 각도에서 비춘다.
『소년이 온다』를 읽다 보면, 이 소설이 단순한 “광주 소설”이 아니라는 걸 금방 느끼게 된다. 한강은 학살의 장면을 직접적으로 반복 묘사하기보다는, 그때의 폭력이 세월이 지나서도 사람들의 몸과 언어, 꿈과 침묵 속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국가 폭력의 상처가 단 한 세대, 단 몇 년 안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각기 다른 인물의 목소리로 계속 증명해 나가는 구조다.
한강 작가는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수 많은 사료와 자료와 증언을 접했을 것이다. 얼마나 괴로웠을까...
지금도 피해자 가해자 주변인 모두 자신을 위해 가슴 아픈 과거의 기억을 조작하고 재생산해 사유화 하고 있다는 것이 그저 마음 아프다.
과거사를 밝히려 조직된 518 기념재단도 마찬가지다. 이름부터 틀려먹었다...

2. 줄거리의 틀 – 한 소년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목소리들
줄거리를 아주 큰 흐름만 놓고 보면 이렇다.
- 1980년, 광주.
동호는 친구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분향소와 시신 안치소를 드나드는 소년이다. 시위대와 계엄군 사이의 폭력이 점점 격해지는 가운데, 그는 “집에 돌아가라”는 어른들의 말 대신, 죽은 친구 곁을 지키는 쪽을 선택한다. - 각 장마다 화자가 바뀐다.
이후 장들은 동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시점으로 이어진다. - 이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왜 그날, 그곳에 있었는지”와 “그 이후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고백한다.
- 산 자와 죽은 자의 시점이 함께 등장한다.
소설의 인상적인 지점은, 이미 죽은 동호의 시점이 다시 등장한다는 점이다. 죽은 자의 목소리는 “왜 그날 총을 쏘았는지” 따지는 대신, 남겨진 이들이 어떤 얼굴로, 어떤 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다. 이 구성 자체가, 역사적 폭력이 끝난 뒤에도 계속 이어지는 ‘살아 있는 트라우마’를 상징한다.
『소년이 온다』의 줄거리를 정확히 따라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이 소설이 독자에게 “너는 이 사건을 어디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니?”라고 계속 질문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느 장면에서는 증인이 되고, 어느 장면에서는 방관자가 되고, 때로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생존자의 자리로 끌려 들어간다.

3. 뇌과학과 심리학으로 보는 『소년이 온다』 – 트라우마는 어떻게 남는가
『소년이 온다』를 “감성 에세이”처럼 읽으면서 동시에 뇌과학과 심리학으로 보면, 몇 가지 키워드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트라우마, 몸의 기억, 생존자 죄책감, 집단 기억.
3-1. 트라우마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뇌 반응’
소설 속 인물들은 사건이 끝난 뒤에도 평범한 일상을 살지 못한다.
- 어떤 인물은 잠들지 못하고,
- 어떤 인물은 사소한 소리에 깜짝 놀라고,
- 어떤 인물은 사람 많은 곳을 피하고,
- 또 다른 인물은 그날의 기억을 아예 꺼내지 못한 채 일에만 몰두한다.
현대 뇌과학에서 말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는,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이 뇌에 어떻게 저장되어 있는지에 더 주목한다.
-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는, 그날의 시간·장소·상황을 조각처럼 저장한다.
- 공포와 위협을 감지하는 편도체는, 총소리·군복·구호 소리 같은 감각들을 “즉시 경보”로 묶어 둔다.
- 시간이 지나도 이 두 회로가 함께 활성화되면,
뇌는 지금 눈앞이 안전한 상황임에도 “다시 그날이다”라고 착각하며 강한 신체 반응(심장 두근거림, 호흡 불안, 몸의 긴장)을 일으킨다.
『소년이 온다』에서 과거 장면이 현재로 계속 비집고 들어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소설의 파편적 구성은, 실제 트라우마 기억이 뇌 속에서 작동하는 방식 – 시간이 순서대로가 아니라, 장면 단위로 갑자기 튀어나오는 구조 – 를 문학적으로 구현한 것에 가깝다.
3-2. “살아남아서 미안하다” – 생존자 죄책감의 심리
동호의 어머니, 동호를 함께 찾던 친구들, 고문을 견디고 살아 나온 인물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말을 속으로 반복한다.
- “그때 내가 더 말렸어야 했다.”
- “내가 대신 죽었어야 했다.”
- “밥 먹는 것조차 미안하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생존자 죄책감(survivor’s guilt)이라고 부른다. 사건의 책임이 자신에게 없다는 걸 이성으로는 알면서도, 정서적으로는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를 죄처럼 느끼는 상태다. 이 죄책감이 오래 지속되면, 뇌는 “살아 있는 나”를 계속 공격한다.
- 스스로를 벌주듯 관계를 끊거나,
- 의도적으로 즐거운 일을 피하거나,
- 몸을 혹사시키는 방식으로 자기 파괴적 행동을 하기도 한다.
『소년이 온다』 속 인물들이 제대로 울지도,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마치 살아 있는 시체처럼 일만 하거나,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사는 모습이 바로 그 전형이다.
3-3. “잊어야 산다” vs “잊으면 안 된다” – 기억을 둘러싼 뇌와 사회의 갈등
이 소설의 또 다른 축은 ‘기억’에 대한 싸움이다.
- 국가 권력은 사건을 지워야만 체제가 유지될 수 있다.
- 피해자와 유가족은 기억해야만 자신이 겪은 일의 의미를 지킬 수 있다.
- 그 사이에서 많은 사람들은
“잊어야 덜 아프다”와 “잊으면 또 반복된다”는 두 문장 사이에서 흔들린다.
뇌 입장에서도 이 갈등은 그대로 존재한다.
- 해마는 기억을 정리하고 맥락을 부여하려 한다.
- 하지만 편도체는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공포 반응을 일으킨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냥 생각하지 않는 게 낫다”며 기억의 방을 닫아버리고, 또 어떤 사람은 “말하지 않으면 더 미쳐버릴 것 같다”며 증언을 선택한다. 『소년이 온다』 마지막 장에서 한강은 “작가”의 목소리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이 이야기를 쓰면서, 이 고통을 다시 불러내면서, 정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또 다른 폭력을 더하는 걸까?
이 질문은 트라우마 서사를 다루는 모든 예술가와, 그 이야기를 소비하는 우리 독자에게도 그대로 돌아온다.

4. 오늘의 우리에게 ‘소년이 온다’가 남기는 것
『소년이 온다』를 다 읽고 나면,
정치적인 분노, 역사에 대한 슬픔과는 조금 다른 감정이 남는다. 가까운 사람의 장례식장을 다녀온 뒤, 며칠 동안 일상으로 완전히 돌아가지못하는 느낌과 비슷하다. 이 소설이 의도적으로 독자의 뇌를 흔드는 지점은 분명하다.
- “사건”이 아니라 “사람”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름을 가진 소년, 어머니, 친구, 출판사 직원, 작가… 역사책 속 숫자가 아니라, “밥 먹고, 사랑하고, 웃고, 겁먹던 사람들”로 기억하게 한다. - “그때 그들”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문제로 끌고 온다.
트라우마와 기억의 방식은 광주라는 특정한 장소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집단 따돌림, 직장 내 괴롭힘, 가정 폭력, 사회적 재난…
어느 순간 우리는 모두 어떤 현장의 ‘생존자’가 될 수 있다. -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싸우게 만든다.
한강은 소설 말미에서 “살아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날의 죽음과 목소리가 완전히 지워지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오래 기억하려 노력하는 것”에 가깝다고 말한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기억을 공유하는 행위 자체가 치유의 한 과정이다.
- 말하지 못했던 경험이 언어로 정리될 때,
- 혼자만의 기억이 아니라 “함께 기억하는 일”로 바뀔 때, 해마는 그 경험을 “영원한 현재”가 아닌 “이미 지나간 과거”로 조금씩 배치할 수 있게 된다.
『소년이 온다』를 읽는다는 건
그 과정을, 아주 조심스럽게 옆에서 함께 걸어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 역사 공부를 위한 소설이기도 하고,
- 트라우마를 이해하기 위한 텍스트이기도 하며,
- 무엇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는 어떤 감각을 잃지 말아야 하는가”를 묻는 문장들의 모음이다.
소년이 온다는 것은,
과거의 한 사건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뇌와 마음에 계속 도착하는 질문이다.
“당신은 이 기억 앞에서,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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