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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학

이탈리아 총리 방한, 유럽 정치지도의 균열이 말해주는 것

by 꼰대가랬숑 2026.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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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총리 방한, 유럽 정치지도의 균열이 말해주는 것

 

 

이탈리아 총리 19년만의 방한

2026년 1월, 이탈리아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19년 만에 한국을 공식 방문했고,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인공지능(AI), 반도체, 방산, 우주, 핵심 광물 공급망까지 협력을 크게 넓히는 데 합의했다. 이번 방한은 단순한 의례 방문이 아니라, 유럽 내부의 힘의 지형이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특히 전통적으로 “절대 우방”에 가깝게 묶여 있던 독일·프랑스·이탈리아 관계에 왜 균열이 생기고 있는지, 그 이면의 정치·경제적 요인과 함께 인간의 뇌와 심리 구조를 통해 한 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CHAPTER 1. 왜 지금, 왜 한국인가 – 멜로니 방한의 표면적 이유와 숨은 계산

청와대와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한·이탈리아 정상회담의 공식 의제는 AI, 반도체, 방산, 항공우주, 핵심광물 공급망, 문화·관광 교류 확대다. 세부적으로는 반도체 산업 협력 양해각서(MOU), 재난 대응·민방위 협력, 문화유산 보호 등 세 건의 MOU가 체결됐다.

이탈리아 입장에서 한국은 단순한 아시아 국가가 아니다.

 

반도체·배터리·AI·방산까지 묶여 있는 ‘기술 강국’이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인도·태평양 핵심 플레이어다. 에너지 위기와 제조업 침체, 대중국 교역 조정에 직면한 유럽에서, 이탈리아는 독일·프랑스만 바라보는 것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도 이탈리아는 의미가 크다. 이탈리아는 EU에서 한국의 4대 교역 파트너이자, 2012년 한–EU FTA 발효 이후 교역 규모를 꾸준히 키워 온 국가다. 독·불 중심의 유럽 네트워크에 더해, 기술·문화·관광이 결합된 새로운 파트너를 확보함으로써 유럽 내 입지를 다변화할 수 있다.

 

겉으로 보면 “AI·반도체·방산 협력 확대”라는 경제·기술 중심의 방문이지만, 유럽 내부에서 힘의 균형이 변하고 있는 시점에, 이탈리아가 한국과 직접적인 전략적 연결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이번 방한은 정치·지정학적 의미도 함께 지닌다.

 

 

CHAPTER 2. 독일·프랑스·이탈리아, 절대 우방이었던 삼각형에 생긴 금

오랫동안 EU의 중심은 ‘프랑코–독일 엔진’이라 불린 프랑스·독일 축이었다. 유로 도입, 단일시장, 주요 방위·에너지 정책은 이 두 나라가 밀어붙였고, 이탈리아는 남유럽의 대표 축으로 이 엔진에 탑승해 온 구조였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이 삼각형에는 여러 방향에서 금이 가고 있다. 우선 정치 이념의 괴리가 크다.

 

프랑스의 마크롱은 친EU·중도·통합을 강조하는 반면, 이탈리아의 멜로니는 국경 관리, 이민, 전통적 가치 등을 강조하는 우파·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대러 제재와 재건 비용, 대중국 전략, 미국과의 관계 설정을 놓고도 각국의 속도와 톤이 미묘하게 다르다.

경제 구조도 변수다.

 

독일은 오랫동안 값싼 러시아 에너지와 중국 수출에 크게 의존해 왔고, 에너지 전환과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충격이 집중됐다. 프랑스는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전략, 이탈리아는 관광·제조·농식품·럭셔리 등 포트폴리오가 다르다. 위기 앞에서 각국이 “공통의 유럽 전략”보다 자국 산업 보조금, 규제, 무역 장벽 등 각자도생 카드를 먼저 꺼내 들면서, 예전 같았던 단일 대오가 흐트러지고 있다.

 

여기에 새로운 연합 구도도 등장했다. 프랑스·독일·폴란드를 묶는 ‘바이마르 트라이앵글’이 다시 주목받고, 영국·이탈리아까지 연계하는 확장형 협력 구상도 이야기되고 있다. 이탈리아는 고전적인 “독·불 추종자”라기보다, 미국·영국·폴란드·동유럽 세력과도 각을 맞추며 상황에 따라 파트너를 바꾸는 ‘피벗 국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과의 협력 확대는, 이탈리아가 독·불과만 묶여 있던 과거 구조에서 벗어나 아시아의 기술 강국과 직접적인 파이프를 연결하는 움직임으로 읽을 수 있다. 절대 우방의 견고한 삼각형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불안정한 삼각형으로 바뀌었다는 신호다.

 

 

CHAPTER 3. 불안한 시대의 뇌 – 동맹이 흔들리는 과학적 이유

유럽 정치지도의 균열은 “특정 정치인의 성격 탓”으로만 보기엔 아쉽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불안한 시대에 인간의 뇌와 심리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와 강하게 연결돼 있다.

 

첫 번째는 위협을 감지하는 편도체(amygdala)의 과활성화다. 전쟁(우크라이나), 에너지 위기, 산업 경쟁력 약화, 인플레이션 같은 거대 스트레스가 계속 쌓이면, 개인과 집단 모두에서 “미래가 불안하다”는 감각이 커진다. 이때 뇌는 장기적인 공통 이익보다, “당장 내 쪽 손실을 줄이는 선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행동경제학에서 다니엘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제시한 전망이론(Prospect Theory)에 따르면, 사람은 동일한 규모의 이익보다 손실에 약 두 배 이상 민감하게 반응한다. 위기 상황의 정치 지도자와 유권자도 마찬가지다. “유럽 전체가 함께 얻는 이익”보다 “우리 나라가 혼자 떠안는 손실”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각국은 EU 공동 규칙보다, 자국 보호를 위한 보조금, 규제, 관세 카드를 쉽게 꺼내 들게 된다.

 

두 번째는 사회정체성이론(Social Identity Theory)이다. 헨리 타지펠이 설명했듯, 사람은 상황에 따라 “나는 유럽인이다”, “나는 독일인·프랑스인·이탈리아인이다”라는 정체성을 번갈아 활성화한다. 평화롭고 경제가 잘 돌아갈 때는 “EU 시민”이라는 넓은 정체성이 작동하지만, 위기 때는 더 작은 집단(국가·지역·정당)에 자신을 먼저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렇게 되면, EU 회의장에 앉아 있으면서도 각 대표의 머릿속에는 “우리 국민이 얼마나 분노할까”, “다음 선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이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자연스럽게 공동의 유럽 이익보다는 “우리 쪽 표를 잃지 않는 선택”에 더 무게가 실리면서, 동맹은 느슨해지고, 새로운 조합을 찾는 움직임이 빨라진다.

 

인류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동맹 관계는 늘 유동적이었다. 부족, 왕국, 제국, 국가 단위로 힘과 자원이 바뀔 때마다 친구와 파트너를 바꿔 왔다. 지금 독·불·이의 균열도 “특별히 이상한 예외”라기보다,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뇌와 심리가 선택하는 하나의 진화적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CHAPTER 4. 한국에게 멜로니 방한이 주는 신호 – 단일 축에서 ‘다핵 구조’로

한국의 입장에서 멜로니 총리 방한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니다. 미국–독·불이라는 전통적 축이 흔들리고, 영국·이탈리아·폴란드·동유럽 등 새로운 중심들이 떠오르는 상황에서, 한국이 어디에 서서 누구와 어떤 네트워크를 짤 것인가를 묻는 신호에 가깝다.

과거에는 “미국–독·불 중심 질서에 잘 붙어 있는 것”이 안정 전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AI·반도체·방산·우주·핵심 광물 등 각 분야별로 플레이어가 다르고,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하나의 굵은 축에 매달리기보다, 여러 개의 노드를 연결하는 신경망(neural network)형 동맹 구조가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이탈리아와의 협력 확대는 그런 흐름 속에서 읽어야 한다. - 유럽 제조업·럭셔리·디자인 강국과 한국의 기술·반도체·방산을 연결하고 - AI·우주·문화·관광까지 엮어서, 독·불에 편중된 유럽 네트워크를 다핵 구조로 바꾸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불안한 시대일수록, 뇌는 “한 곳에 올인해서 안전을 확보하고 싶다”고 속삭인다. 하지만 국제 정치와 공급망에서는, 너무 한 축에 기대는 것이 오히려 가장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멜로니 총리의 방한은, 한국에게도 유럽에게도 “이제는 단일 축이 아니라, 다핵 네트워크로 움직여야 할 때”라는 메시지를 조용히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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