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 — 교보문고 올해의 소설 1위 집과 이웃, 그리고 불안한 마음의 과학
김애란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를 집·이웃·계급 감각이라는 키워드와 일상 뇌과학으로 재해석한 감성 에세이입니다. 집값과 전세, 층간소음과 좋은 이웃 사이에서 흔들리는 우리의 마음을, 편도체와 해마, 비교 본능이라는 렌즈로 함께 살펴봅니다.

CHAPTER 1 — 『안녕이라 그랬어』, 집을 둘러싼 이야기들
김애란의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에는 집과 방, 골목과 이웃이 계속 등장한다. 새로 얻은 집,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는 집,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좋은 이웃과 나쁜 이웃. 표제작 「안녕이라 그랬어」를 비롯해 「홈 파티」, 「좋은 이웃」 같은 단편들을 읽다 보면, 이야기의 배경이 늘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그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 집이 어느 동네에 있는지, 몇 평인지, 전세인지 월세인지,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무엇인지에 따라 인물들의 마음과 관계가 미세하게 달라진다.
『안녕이라 그랬어』 속 인물들은 대부분 거창한 욕망을 품은 사람들이 아니다. 그저 “조용히 살고 싶다”, “여기서 쫓겨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이웃과 적당히 잘 지내고 싶다” 같은 작은 소망을 품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 소망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집값과 전·월세, 생활비와 카드값이 마음 한쪽을 막고 서 있고, 위층과 아래층, 옆집과 우리 집 사이의 얇은 벽은 언제든 갈등의 진원지가 된다. 『안녕이라 그랬어』는 그런 현실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한 문장으로 비추어 보여준다.
그래서 이 소설집을 읽고 나면, 내 방과 우리 집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달라진다. “여기서 나 혼자 사는 게 아니다”라는 감각. 벽 하나, 계단 하나, 현관 앞 신발 하나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포개져 있다는 사실. 『안녕이라 그랬어』는 결국 우리가 매일 오르내리는 계단과 엘리베이터 안에서 벌어지는, 아주 작지만 중요한 감정들의 기록처럼 느껴진다.

CHAPTER 2 — 집값과 신경계: 편도체는 왜 집 문제에 그렇게 예민할까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다 보면, 인물들의 불안이 대부분 “경제”와 “집”에서 시작된다는 걸 느끼게 된다. 언제 전세 만기가 다가올지, 보증금을 올려주지 못하면 어디로 가야 할지, 이 집이 혹시 전세사기와 엮여 있는 건 아닐지. 이런 생각은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몸 전체를 긴장시키는 신호다. 뇌에서 편도체는 위험을 감지하는 센터 역할을 하는데, 집과 돈 문제는 이 편도체를 강하게 자극한다. 안정된 거처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원시 시대의 “쫓겨남”과 비슷한 신호로 해석된다.
그래서 집 문제는 유난히도 잠을 빼앗는다. 『안녕이라 그랬어』 속 인물들이 밤마다 뒤척이고, 작은 소음에도 쉽게 예민해지는 이유는, 이미 뇌가 “여기가 안전한 곳인가?”를 계속 묻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편도체가 자꾸 위기 신호를 보내면, 심장은 빨리 뛰고, 근육은 굳어지고, 전전두엽은 합리적인 판단 대신 최악의 시나리오를 먼저 떠올리기 쉽다. 이때 우리는 더 쉽게 짜증을 내고, 이웃의 작은 행동에도 과도하게 반응한다.
『안녕이라 그랬어』는 이런 과학적 설명을 직접 들려주진 않지만, 인물들의 몸과 말 사이에 흐르는 긴장으로 그 사실을 보여준다. 그들이 불안한 건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라, 신경계가 집과 생존을 너무 밀접하게 묶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집을 읽고 나면, 집 문제에 예민한 나 자신을 조금은 덜 비난하게 된다. “아, 내 편도체가 지금도 나를 살려보겠다고 요란하게 울고 있구나”라고, 살짝 거리 두며 바라볼 수 있게 된다.

CHAPTER 3 — 좋은 이웃과 나쁜 이웃, 뇌는 경계선을 어디에 긋는가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에서 특히 인상적인 건 이웃들이다. 「좋은 이웃」 같은 작품 속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나는 적어도 민폐는 끼치지 않으려고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층간소음 한 번, 주차 문제 한 번, 택배 상자 하나가 갈등의 불씨가 된다. 오늘도 우리 뇌는 “저 사람은 우리 편인가, 아닌가”를 조용히 계산한다.
이때 작동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뇌다. 타인의 표정, 말투, 행동 패턴을 빠르게 스캔해 “위협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회로. 자주 마주치는 이웃은 더 빨리 분류된다. 첫인상이 좋았던 사람은 작은 실수를 해도 쉽게 용서되지만, 이미 “저 집은 문제 많다”는 라벨이 붙은 이웃에게는 작은 소음도 참기 힘들어진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후광 효과와 낙인 효과라고 부른다. 한 번 붙은 인상은 잘 바뀌지 않고, 뇌는 그 인상을 강화하는 증거만 골라서 본다.
『안녕이라 그랬어』 속 이웃들이 오해로 갈등을 키우고, 뒤늦게 진심을 알게 되는 장면을 읽다 보면, 우리 뇌가 얼마나 쉽게 “편 가르기”를 하는지 보인다. 좋은 이웃이 되는 일은, 사실 거창한 선함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내 뇌가 붙여놓은 라벨을 잠깐 의심해 보는 것. “혹시 내가 본 건 반쪽짜리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번 더 해보는 것. 『안녕이라 그랬어』는 이 조용한 의심의 중요성을, 이야기를 통해 말해준다.

CHAPTER 4 — “안녕이라 그랬어”라는 말이 건드리는 기억과 감정
제목 『안녕이라 그랬어』는 묘하게 두 가지 느낌을 동시에 품고 있다. 누군가에게 인사하듯 건네는 “안녕”과, 관계의 끝에 겨우 내뱉는 “안녕”. 해마는 우리가 한때 살았던 집, 함께 웃던 사람, 이별을 고하던 계단과 현관을 장소와 함께 저장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특정 골목을 지나가거나 비슷한 현관문을 보면, 그 순간의 감정이 갑자기 되살아나는 이유다. 『안녕이라 그랬어』의 문장들은 이런 장소 기억을 조용히 건드린다.
“안녕이라 그랬어”라는 말을 떠올리는 순간, 각자의 뇌에서는 서로 다른 장면이 재생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첫 자취방을 떠나던 날의 문 손잡이 감촉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던 관계의 마지막 인사가 떠오를 수 있다. 편도체는 그때의 감정을 다시 띄우고, 심장은 그때처럼 약간 빨라진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이야기와는 별개로 내 인생의 ‘안녕’들이 떠올라 가슴이 묵직해진다.
『안녕이라 그랬어』 속 인물들은 삶의 어느 지점에서 “안녕”이라는 말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선다. 더 버틸 수도 있지만, 버티는 것이 더 이상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 순간. 우리는 그때 비로소 “안녕”을 입안에 굴려 본다. 이 말에는 끝과 시작이 함께 들어 있다. 뇌는 익숙한 것을 떠나야 할 때 불안을 크게 느끼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 앞에서 희미한 기대도 함께 느낀다. 이 소설집의 제목은, 어쩌면 그 두 감정이 겹쳐 있는 상태를 가장 짧게 표현한 문장일지도 모른다.

CHAPTER 5 — 오늘의 집과 내일의 안녕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안녕이라 그랬어』를 덮고 나면, 결국 남는 건 숫자나 설정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사는 이 집과 이 동네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우리는 모두 경제적 현실 위에 서 있다. 집값에 따라, 동네 학군에 따라, 이력서에 기재할 주소에 따라, 삶의 선택지가 달라지는 사회를 살고 있다. 뇌는 이 비교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평가하고, 때로는 열등감과 수치심으로, 때로는 방어적인 우월감으로 반응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다. 뇌과학은 “한 번 굳어진 회로도 반복된 경험을 통해 조금씩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집과 이웃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비교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대신, 오늘의 집이 나에게 주는 안전과 쉼의 요소들을 의식적으로 찾아보는 것. 이웃을 잠재적 위험이 아니라, 최소한 “같은 배를 탄 사람들”로 바라보려는 연습을 해보는 것. 이런 작은 시도들은 편도체의 경보음을 조금씩 낮추고, 전전두엽이 상황을 차분히 해석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준다.
『안녕이라 그랬어』는 우리에게 완벽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집과 이웃, 계단과 골목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버티고, 상처받고, 다시 안녕을 연습하는지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가 지키고 싶은 ‘안녕’은 거창한 성공이나 내 집 마련의 완성형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 이 집에서 이웃과 큰 전쟁 없이 지나갔다는 안도감, 내 마음이 완전히 부서지지 않았다는 확인. 그 작은 안녕을 쌓아가는 것이, 『안녕이라 그랬어』가 우리에게 quietly 권하는 삶의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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