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소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왕녀와 시녀 사이, 비교에 지친 마음을 위한 연습곡

by 마음이랑 2025. 12. 15.
반응형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왕녀와 시녀 사이, 비교에 지친 마음을 위한 연습곡

박민규 장편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외모지상주의와 계급 감각, 그리고 일상 뇌과학과 연결해 풀어낸 감성 에세이입니다. 왕녀와 시녀의 은유 속에서, 우리는 왜 끝없이 비교하고 열등감을 소비하는지, 그리고 그 회로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지 천천히 짚어봅니다.

목차
1. 80년대 변두리, 한 곡의 파반느로 남은 사랑 이야기
2. 왕녀와 시녀의 은유, 뇌는 언제부터 얼구을 서열화했을까
3. 80년대 도파민 경제, 변두리 청춘의 욕망회로
4. 사랑, 열등감, 자존감의 신경과학
5. 왕녀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늦지 않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왕녀와 시녀 사이, 비교에 지친 마음을 위한 연습곡

 

CHAPTER 1 — 80년대 변두리, 한 곡의 파반느로 남은 사랑 이야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1980년대 서울 변두리를 배경으로 한다. 화려한 강남 대신, 다소 촌스럽고 서늘한 골목들, 삼류 극장과 허름한 호프집이 무대다. 그 속에서 “못생긴 여자”와 그녀를 사랑하게 된 남자 화자가, 또 다른 인물 요한과 함께 삼각 구도를 이룬다. 외형만 보면 오래된 연애소설 같지만, 읽다 보면 금방 알게 된다. 이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인 동시에, 외모지상주의와 계급 감각에 찔린 세대의 성장기라는 걸.

 

제목에 쓰인 파반느는 원래 죽은 공주를 위한 느린 곡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그 선율을 빌려, “왕녀가 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을 오래 끌어안는다. 화려한 쇼핑몰과 광고판 바깥에 서 있던 청춘들, 언제나 주인공이 아닌 들러리였던 얼굴들. 그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짜 사랑을 해보려 했던 순간을, 이 소설은 오래된 레코드판처럼 반복 재생해 준다.


CHAPTER 2 — 왕녀와 시녀의 은유, 뇌는 언제부터 얼굴을 서열화했을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가장 강렬한 장치는 “왕녀와 시녀”의 은유다. 세상은 소수의 왕녀에게만 빛과 스포트라이트를 쏟아 붓고, 나머지는 시녀로 밀려난다. 뇌과학적으로 보자면, 우리 뇌는 이미 오래전부터 “얼굴”을 사회적 신호로 써왔다. 대칭적인 얼굴, 매끈한 피부, 광고에서 본 표준 미인의 이미지에 가까울수록 뇌는 그것을 건강, 지위, 안전의 신호로 오해하기 쉽다. 편도체와 보상 회로가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너무 빠르게 만들어 버린다.

 

문제는 이 회로가 너무 잘 작동한다는 점이다. 한 번 왕녀로 분류된 얼굴은 조금 못된 행동을 해도 쉽게 용서받고, 시녀로 분류된 얼굴은 똑같은 실수를 해도 더 심한 비난을 받는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못생긴 여자”를 정면으로 사랑의 중심에 세우는 건, 이 뇌의 자동 서열화를 거슬러 올라가는 작업이다. 소설은 묻는다. 우리가 사랑한다고 믿어온 것은, 정말 그 사람 자신이었는지, 아니면 사회가 심어 준 외모 이데올로기의 반사광이었는지.


CHAPTER 3 — 80년대 도파민 경제, 변두리 청춘의 욕망 회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속 80년대는 지금과 많이 다르면서도 이상하게 닮아 있다. 백화점 쇼윈도, 외제차, 서구 팝 음악, 광고 속 모델들. 자본주의가 처음 본격적으로 “이렇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이라는 이미지를 대량으로 유통하던 시기다. 뇌의 보상 회로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것이 새롭고 강한 도파민 자극이었다. 변두리에 사는 청춘들은 그 자극의 바깥에서, 언젠가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막연한 갈망과 자격지심 사이를 오간다.

 

지금의 SNS 피드와 비교해 보면 구조는 거의 같다. 왕녀의 삶은 타임라인 상단에 고정되고, 시녀의 일상은 스크롤 아래로 밀려난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인물들은 인스타도, 유튜브도 없던 시절에 이미 “좋아요” 구조를 살고 있었다. 타인의 소비와 외모, 계급을 바라보며 자기 위치를 매일 갱신하는 삶. 그 안에서 사랑은 언제나 불안과 열등감에 오염된 채 시작된다. 소설이 주는 묵직함은, 그 구조가 지금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깨달음에서 온다.


CHAPTER 4 — 사랑, 열등감, 자존감의 신경과학: 나는 왜 항상 들러리라고 느낄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사랑은 결코 순수하거나 깔끔하지 않다. 화자는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그녀와 함께 걸을 때 쏟아질 시선을 두려워한다. 요한을 향한 복잡한 감정 속에는 우정과 질투, 선망과 증오가 뒤섞여 있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사랑의 회로와 비교·질투의 회로가 동시에 활성화된 상태다. 애착을 담당하는 옥시토신과, 서열과 지위를 감지하는 편도체·보상 회로가 한 사람 안에서 끊임없이 부딪힌다.

 

이런 충돌은 결국 자존감의 문제로 귀결된다. “나는 사랑받을 만큼 괜찮은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흔들릴수록, 우리는 상대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인물들이 끝내 완전히 행복해지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회로가 너무 깊게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나는 왜 늘 왕녀의 옆에서 시녀처럼 서 있는 기분일까”를 묻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CHAPTER 5 — 왕녀가 되지 못해도 괜찮다는 말을, 너무 늦지 않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덮고 나면, 이상하게도 “못생긴 여자”의 얼굴이 더 또렷하게 남는다. 그녀는 끝내 왕녀가 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이 사실은 우리 뇌가 믿어온 세계관을 슬쩍 뒤흔든다. “왕녀로 태어나지 못하면 실패한 삶”이라는 스크립트를, 정말 끝까지 붙들고 살아야 하는지 묻게 만든다.

 

현실의 우리는 여전히 왕녀/시녀 구조 속에 있다. 팔로워 수, 연봉, 거주지, 외모, 학력까지 끝없는 순위표가 뇌의 비교 회로를 자극한다. 그렇다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는 일은, 어쩌면 작은 실험일지도 모른다. “왕녀가 아닌 사람”에게도 전부를 걸어보는 연습, “시녀라고 불렸던 얼굴”에 마음을 내어주는 상상. 그 상상을 자꾸 반복하다 보면, 뇌 속 서열표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중요한 건 우리 모두의 삶에 이미 각자의 파반느가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는 지나쳐버린 첫사랑일 수 있고, 누구에게는 끝내 잡지 못한 기회나,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젊은 날일 수도 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말한다. “그 상실을 애도할 권리는, 왕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왕녀가 아니어도 좋다고, 시녀로 불리더라도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비로소 우리 각자의 느린 춤이 시작된다. 그 춤을 위해 이 소설은, 아주 오래된 음반처럼 오늘도 조용히 반복 재생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25.12.13 - [책 소개]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죽음을 공부하며 삶을 배우는 시간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죽음을 공부하며 삶을 배우는 시간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죽음을 공부하며 삶을 배우는 시간『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죽음을 앞둔 노교수 모리와 제자 미치의 마지막 수업을 담은 책입니다. 이 글은 그들의 화요일 수업을

kkondaego.tistory.com

2025.12.11 - [책 소개] - 안녕이라 그랬어 — 교보문고 올해의 소설 1위 집과 이웃, 그리고 불안한 마음의 과학

 

안녕이라 그랬어 — 교보문고 올해의 소설 1위 집과 이웃, 그리고 불안한 마음의 과학

안녕이라 그랬어 — 교보문고 올해의 소설 1위 집과 이웃, 그리고 불안한 마음의 과학김애란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를 집·이웃·계급 감각이라는 키워드와 일상 뇌과학으로 재해석한 감성

kkondaego.tistory.com

2025.12.10 - [책 소개] - 맨큐의 경제학 — 숫자보다 먼저 움직이는 우리의 뇌에 대하여

 

맨큐의 경제학 — 숫자보다 먼저 움직이는 우리의 뇌에 대하여

맨큐의 경제학 — 숫자보다 먼저 움직이는 우리의 뇌에 대하여『맨큐의 경제학』을 단순한 경제학 입문서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뇌가 세상을 계산하는 방식으로 재해석한 감성 에세이입니

kkondaego.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