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블 영화 속 토니 스타크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얼굴이 있다. 바람둥이, 억만장자, 공학자, 그리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허황돼 보이는 꿈까지. 영화 아이언맨의 감독 존 파브로는 현대판 토니 스타크의 모델로 실제 한 사람을 떠올렸다.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와 전기차 회사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Elon Musk)다.
물론 그의 가슴에 진짜 아크 원자로가 박힌 건 아니다. 하지만 1971년 6월 28일,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에서 태어난 이 남자의 가슴에는 그에 못지않은 수준의 집착과 에너지, 그리고 과격한 이상이 들어 있다. 이 글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스페이스X와 테슬라, 화성 식민지 구상까지, 일론 머스크라는 인물이 어떤 궤적을 그려 왔는지 한 번에 정리해 본다.
CHAPTER 1. 남아공의 내성적인 소년, 코드로 세상을 두드리다
머스크는 전기·기계 엔지니어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집안에는 기계와 도구가 늘 있었고, 자연스럽게 전기와 숫자에 익숙해졌다. 어린 시절의 그는 말수가 많지 않고 책과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아이였다. 이미 초등학생 때부터 컴퓨터를 손에 쥔 뒤, 대부분의 시간을 프로그래밍 독학에 쏟는다.
12살 때 그는 우주 전투 게임 하나를 직접 코딩해 게임 잡지사에 코드를 팔고, 500달러를 받는다. 코드 한 덩어리가 현실의 돈으로 바뀌는 경험을 십 대 초반에 해버린 셈이다. 이 체험은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 곧 “경제적 자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각인시켜 준다.
10대 후반, 머스크는 정치·사회적 상황이 불안했던 남아공을 떠나 어머니의 국적을 활용해 캐나다로 이주한다.
퀸즈대학교를 거쳐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로 편입해 물리학과 경제학을 함께 전공한다. 숫자를 다루는 두 학문을 동시에 택했다는 점에서, 이후 그의 행보가 “기술과 돈, 둘 다 움직이는 사람”이 될 것임을 예고하는 장면처럼 보인다.
그의 이력에서 상징적인 장면은 1995년, 스탠퍼드 대학 물리학 박사 과정에 입학했다가 이틀 만에 자퇴한 일이다. 실험실보다 더 흥미로운 거대한 실험장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실험장은 바로 인터넷과 에너지, 그리고 우주였다.
CHAPTER 2. ZIP2와 X.com, 두 번의 ‘현금 아웃’이 만든 억만장자
스탠퍼드를 떠난 24살의 머스크가 처음 뛰어든 곳은 인터넷 초창기의 황무지였다. 그의 첫 회사는 형과 함께 만든 Zip2(집투). 신문사들이 온라인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 지역 정보·지도 서비스 플랫폼이었다. 뉴욕타임스, 시카고 트리뷴 같은 신문사가 고객이었고, 당시로서는 꽤 앞선 개념의 온라인 생활 정보 인프라였다.
창업 4년 뒤인 1999년, 컴팩(Compaq)이 Zip2를 인수하면서 머스크는 약 2,200만 달러를 손에 쥔다. 나이 28살. 첫 번째 성공적인 엑시트였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여기서 속도를 줄이겠지만, 머스크는 다음 판을 준비한다.
그가 노린 두 번째 영역은 온라인 금융이었다. Zip2로 만든 자본을 기반으로 인터넷 은행 서비스 X.com을 세운다. 은행 계좌와 보험, 투자를 모두 온라인에서 처리하게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메일 결제 서비스를 하던 콘피니티(Confinity)를 인수하고, 그들이 갖고 있던 서비스 이름 ‘PayPal(페이팔)’에 집중하기로 한다. 회사 이름도 아예 X.com에서 PayPal로 바꾼다.
선택은 적중했다. 온라인 쇼핑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에 “이메일 주소만 알면 돈을 보낼 수 있는 서비스”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결제 습관을 바꾸었다. 2002년, eBay가 페이팔을 15억 달러 규모로 인수하면서 머스크는 두 번째로 엄청난 현금을 손에 넣게 된다. 창업 후 불과 3년 만의 일이었다.
CHAPTER 3. 세 번째 회사, 하늘이 아니라 ‘우주’를 올려다본 스페이스X
여기까지의 서사를 보면 머스크는 이미 “죽을 때까지 편하게 살 수 있는 두 번의 엑시트”를 경험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지구 대기권 위를 향하고 있었다. 2002년 6월, 그는 세 번째 회사 SpaceX(스페이스엑스)를 설립한다.
목표는 단순히 로켓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로켓 발사 비용을 파격적으로 낮추고, 우주 화물 운송을 민간이 담당하며, 장기적으로는 화성에 사람이 살 수 있는 식민지를 만드는 것. 머스크가 말하는 “인류의 백업 플랜”은 이렇게 시작됐다.
스페이스엑스의 첫 로켓은 액체 연료를 사용하는 Falcon 1(팰컨 1)이었다. 그러나 우주로 가는 길은 그가 12살에 만들었던 우주 전투 게임처럼 쉽지 않았다. 첫 번째 발사는 연료 누출과 화재로 실패했고, 두 번째 발사는 고도 321km까지 도달했지만 회전 제어 문제로 임무를 마쳤다. 세 번째 발사 역시 실패로 끝났다.
스타트업이라면 한 번만 대형 실패가 나도 회사가 휘청이기 마련인데, 스페이스엑스는 세 번의 연속 실패를 버텨냈다. 그리고 2008년 9월, 네 번째 발사에서 팰컨 1이 마침내 궤도 진입에 성공한다. 같은 시기, 미국항공우주국 NASA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 화물을 보내는 파트너로 스페이스엑스를 선택했고, 스페이스엑스는 민간 기업으로는 최초로 ISS에 화물을 보내는 ‘우주 화물선’ 사업자가 된다. 우주 전투 게임을 만들던 12살 소년이 실제 우주선에 사람과 물자를 싣는 회사의 CEO가 된 셈이다.
CHAPTER 4. 테슬라와 솔라시티, 지상에서 펼치는 에너지 실험
머스크가 집착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재생에너지다. 인터넷과 우주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는 “지구에서 쓰는 에너지 시스템 자체를 갈아엎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구체적인 회사로 나타난 것이 전기차 회사 테슬라(Tesla)와 태양광 발전 회사 솔라시티(SolarCity)다.
2003년 설립된 테슬라는 초창기부터 이단아였다.
당시 전기차의 이미지는 작고, 느리고, ‘환경 의식 있는 사람만 타는 차’에 가까웠다. 테슬라는 이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는다. 첫 양산 모델인 로드스터(Roadster)는 친환경 이미지 대신 고성능 스포츠카를 내세웠고, 가격도 10만 달러가 넘는 고가였다.
“누가 이런 비싼 전기차를 사겠어?”라는 회의적인 전망과 달리, 로드스터는 200대 수준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1,000대 이상 판매되며 시장에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후 테슬라는 모델 S, 3, X, Y 등 더 대중적인 세단과 SUV를 내놓으며 “전기차=느리다”는 편견을 깨고, 자율주행과 OTA 업데이트 같은 새로운 자동차 문법을 제시했다.
솔라시티는 이 퍼즐의 다른 조각이다. 전기차가 늘어나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전기를 어디서 어떻게 만들 것인가이다. 솔라시티는 가정과 상가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스스로 전기를 생산하게 하고, 남는 전기를 다시 전력망에 흘려보내는 구조를 설계했다. 여기에 테슬라의 배터리 기술이 결합하면,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에너지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CHAPTER 5. 화성, 8만 명, 그리고 아직 꺼지지 않은 ‘아크 원자로’
머스크의 장기 목표는 놀랍도록 대담하다. 그는 2030년 전후, 약 8만 명이 살 수 있는 화성 식민지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소수의 선발대가 먼저 화성에 가서 돔 형태의 기지와 농작물을 재배할 환경을 만들고, 이후 수만 명이 순차적으로 이주해 독립적인 도시처럼 작동하는 거점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때 에너지원은 태양광, 이동 수단은 전기차, 물류는 재사용 로켓이 담당한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실제 회사들의 사업 계획서에 써 넣는 사람이 바로 일론 머스크다. 스페이스X도, 테슬라도 모두 초기에 수차례 파산 위기를 겪었지만, 실패와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슴속 ‘아크 원자로’는 아직 꺼지지 않은 듯하다.
우주, 에너지, 인터넷. 세 개의 다른 영역을 관통하는 머스크의 공통된 질문은 어쩌면 이 한 줄일지도 모른다. “인류가 조금이라도 오래, 조금이라도 더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은 무엇일까?” 답이 옳든 그르든, 그 질문을 실제 기업과 로켓과 자동차로 구현해 보고 있다는 점에서, 일론 머스크는 21세기 가장 극단적인 의미의 ‘현실판 아이언맨’이다. 아크 원자로는 없지만, 그에 버금가는 위험한 에너지와 집착을 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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