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은 해제되었지만 이야기는 남는다. 놀란 눈으로 헐래 벌떡 뛰어 오는 사람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들, 국회를 둘러싸고 진입을 막는 사람들, 총을 든 사람들까지...
계엄령이 남긴 것들
80년대 광주 사태를 통해 우리가 알게 된 사실들은 분명하다. 계엄 상황에서 일반 민중들은 맨 몸으로 폭력에 맞설 수밖에 없다. 그 헤아릴 수 없는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유명을 달리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폭력은 그 무엇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계엄군의 국회 진입을 막는 안귀령(민주당 대변인)은 어느 방송해서 '내가 누렸던 자유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라고 한다. 그 행보가 깔끔한 인사는 아니기에 그 말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총을 든 군인을 막아선 행동만큼은 높게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우리는 너무 오랜 평화 속에서 지금의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잊고 살았으며, 이번 계엄사태를 계기로 다시 한번 당연할 수 있는 일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국회를 둘러싼 경찰들은 대다수는 병역을 대신해 복무하고 있는 의무경찰이고, 그 복무 기간이 끝나면 일상에서 마주칠 우리 중의 한 명이다. 방패와 바리케이드를 치고 국회 정문을 막고 있던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계엄군으로 동원된 707특임대는 어떤 마음으로 국회에 진입하였을까... 그 무력으로 이렇게 다친 사람 하나 없이 지나갈 수 있었던 이유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특전사령관의 말을 들어보면 실탄은 지급하지 않았고, 시민이 다치지 않도록 유의하며 국회 진입 후 국회의원을 억류하지 말라는 구두 명령을 전달했다고 하니 나온 결과였을 것이다.
온몸으로 국회 이동을 막은 시민들도 만약 실탄이 든 총을 계엄군이 지녔다면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겠고,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도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언론인의 절규
뒤늦게 관련 이슈를 찾아보다 너무 마음이 아픈 영상을 보게 되었다. 명령을 받은 계엄군과 그 뒤를 따르며 외치는 어느 기자의 이야기다.
국회를 나와 철수하는 계엄군을 따라가며 외치는 그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민주주의를 지켜달라고, 국민들이 마련해 준 그 총으로 국민을 지켜 달라고 외치는 그 목소리에 나는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낀다. 기자도 거대한 폭력 앞에 그저 힘 없이 절규할 수밖에 없는 작디작은 그 무엇일 뿐이었음을 느꼈을 것 같다.
일반인보다 몇백배 더 많이 정치 현장에서 이런저런 상황을 겪었을 이 기자에게도 이 상황은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으리라 예상된다. 그동안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폭력에 노출되어 살아왔다. 사소한 친구들의 다툼, 음주운전 사망 사고, 보이스피싱, 데이트 폭력, MZ 조폭들의 등장, 유튜브 조회수를 노린 합의 격투, 주차시비, 재산을 노린 사기, 살인 등 어느 것 하나 작지 않은 일들이었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컸다.
민생은 뒤로한채 당대표의 방탄에만 몰두하던 거대 야당, 5공 시절을 그리워하며 한 물 간 정책이나 식견으로 자가당착에 빠져 있던 여당, 그리고 그 지지자들의 충돌, 검찰은 검찰대로 조직만을 위한 활동에 전념했고, 경찰은 경찰대로 눈치보기 바빴다. 크고 작은 비위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게 사회는 혼란했고, 우리는 그런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되어 살아왔다.
그러나 '비상계엄'이라는 이 거대한 폭력 앞에서 위에 열거한 폭력들은 너무도 하찮게 보이기까지 하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맞닥뜨렸던 것이고, 이겨내었다.
이런 용기 있는 외침이 있고, 그 외침이 모여 다시 한번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