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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그 리포트 16편 자살충동

by 꼰대가랬숑 2023.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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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죽음을 인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직. 간접 적으로 경조사를 통해 경험 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내 자신에게 죽음을 투영하거나 공감하기는 어렵다. 그만큼 내 자신의 죽음이라는 상황은 왠만해서는 스스로 인지하기 어렵다. 단 극한의 고통을 겪을 때는 예외다.

 

 

 

마이너리그 리포트 16편 자살충동

철 없이 아름답게 살기만 하던 때, 간혹 뉴스에 등장 하는 자살에 관한 이슈 들은 나에게는 먼 이야기일 뿐이었다. 세상은 아름답고, 사람들은 나의 아픔과 어려움을 늘 공감해 주고 도와 주는 선한 존재 였다. 매일밤 나를 찾는 전화가 빗발 쳤고, 술자리의 락스타 같았다. 물론, 계산은 내가 했다. 골프 멤버로 매번 불려 다니기도 했고, 꽤 유명한 거리에 회사가 위치한 터라 늘 손님이 찾아왔다. 간단한 거리 소개와 쇼핑을 겸한 티타임, 저녁과 술자리 순으로 하루가 지나 갔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돈독 했고, 몇천 정도는 말 한마디로 왔다갔다하는 쿨한 인생이었다. 예상하고 있겠지만 이런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한 자리에서 오픈하고 망하기 까지 7년여... 차라리 꿈이길 바라며 하루 하루 절망하며 보내야 했다. 

그 중 제일 크게 힘들었던 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배신이었다. 어려울 때 주고 받으며 도와 줬던 사람들이 제일 먼저 외면하기 시작 했다. 저녁 술자리 전화도 줄기 시작했고, 날 찾던 사람들이 하나 둘 줄어들기 시작 했다. 돈을 빌려 주었던 친구는 달라는 전화 통화 이후 사라졌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가족들에게 돈을 빌리기 시작했고, 대출을 받기 시작했다. 급한건 먼저 막아야 했으니까.... 그 시점의 선택이 아마도 나를 제일 힘들게 하는 하지 말았어야 했을 순간 였던 것 같다. 그 선택의 결과로 매일, 매 시간 시달려야 했고, 자존감은 사라져 갔다. 

 

그 시점 문득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더라

 

 

자살시도 

누군가의 자살 소식에 "죽을 용기로 좀 더 열심히 살지" 라고 나는 그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없이 폄하하고 냉소하였다. 나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확신과, 그런 정도는 이겨낼 용기와 배짱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 왔다. 직업이 되지 않았지만 대학 등록금을 해결 할 수준의 운동 경력과 그로 인한 혹독한 군경력과 확연히 차이나는 피지컬로 늘 자신감 있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런 나에게 닥친 이 불운을 이겨낼 내공이 부족 했음을 발견 했던 당시에는 그 또한 나를 무너뜨리는 또 다른 고통의 동기였다. 매일, 매시간 오는 채무 상환 독촉 전화와 압류 문자들, 찾아오는 빚쟁이들은 지금 생각해도 그 때는 모든 것들이 감당하기 힘들었던 일들였다. 어느날 문득, 나는 걷고 있었고 정신차려 보니 반포대교 위에서 한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죽을 생각으로 간건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방향을 그리 잡고 무작정 걷던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죽거나 죽고싶은 충동은 분명 아니였다. 다만, 나는 그 곳에 있었다. 그저 막막하기만 했으니까. 

그런데, 반전은 그 곳에서 내려다 보는 강의 높이가 그리 높지 않아 보였고, 순간 의문이 들었다. "여기서 떨어져서 죽는다고" ...

내가 판단하기에 거기서 죽을 확률은 극히 낮아 보였다. 더불어, 나는 공수교육 4주, 기본강하 10회 정도를 했었고, 군에서 대테러 훈련만을 받아 밧줄 타는 솜씨가 제법 좋았던 사람이었다. 아마도 이게 큰 도움이 된것도 같다. 어쨌거나 그 높이에서의 공포는 없었고 그 곳에 있는 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생각이 정리되고 나니 갑자기 허기가 졌다. 

 

 

 

다시 생존

배가 고팠다. 가진 한도 내에서 먹는걸 해결해야 했기에, 하루에 라면 한개 정도로 배고픔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그 시기 늘 배가 고팠다. 자존심은 남아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내 상황을 말 할 수 없었다. 힘들었지만 그랬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내가 가진 전재산을 먹는데 쓰고 싶어 졌다. 내게는 무려15,000원이라는 거금이 있었고, 찰나의 순간을 넘긴 내 허기는 라면 한개로는 해결 할 수 없었다. 터벅터벅 걸어 학동사거리 근처 자주 가던 복어집으로 갔고 매운탕 한그릇을 똑딱 해치웠다. 간만에 느껴지는 포만감과 건강한 맛이었다. 음식다운 음식이 얼마만인지 눈물도 나더라. 배가 부르니 기분이 좋아졌다.

알 수 없는 힘이 조금은 생겨난듯도 했다. 아마도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던건 그 때 였던것 같다. 그 뒤로 여기저기 전화를 했고, 부탁을 했다. 일을 해야 다. 그간 일로 지인들에게 부탁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 이후로 상황이 조금씩 더디지만 개선되기 시작했던것 같다. 

 

1.힘들때는 도움을 요청하자

2.죽는다는건 생각보다 힘들다

3.따뜻한 밥 한끼를 먹자

4.아무것도 안하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살자.
영광은 살아서 다시 만들어 내면 된다.
내가 산 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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