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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타인의 인정 없이는 불안할까?

by 꼰대가랬숑 2025.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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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타인의 인정 없이는 불안할까?

 

사람은 본능적으로 사회적 존재다. 생존을 위해 소속감을 필요로 하고, 뇌는 끊임없이 타인의 반응을 감지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평가한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현대 사회에서 sns와 결합되며 과잉 반응으로 이어지곤 한다. 당신도 타인의 인정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꼭 봐야 할 내용이다.

 

 

 

우리는 왜 그렇게 남의 시선을 의식할까?


'나 자신이 되기엔 세상의 눈이 너무 많다.' 요즘 사람들의 일상을 관통하는 문장이 있다면 이 문장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매일 같이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존재한다. SNS에 올릴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여러 각도를 바꾸고, 누군가와의 대화에서조차 '잘 보이기 위한'말을 고른다. 타인의 시선은 이제 선택적인 요소가 아닌, 나라는 사람을 규정하는 절대적 기준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왜 이렇게 타인의 인정을 갈망하며, 그 인정이 없으면 불안해지는 걸까?

칼 융은'자아는 사회적 가면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칼 융이 말한 '페르소나(persona)'는 우리 내면의 진짜 자아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우리가 쓰고 있는 가면이다. 이 페르소나는 우리가 사회적 관계 속에서 기능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만, 문제가 되는 건 이 가면이 진짜 자아와 괴리될 때다. 

사람들은 자아를 잃고 가면 그 자체가 되며, 그 순간부터 타인의 인정 없이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낀다. 바로 여기서부터 불안은 시작된다.'나는 진짜 나로 살아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끊임없이 외부의 인정과 칭찬을 갈구하게 되는 것이다.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은 인간의 가장 강력한 감정 중 하나로 '수치심(shame)'을 꼽는다. 그녀에 따르면, 우리는 타인에게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며, 완벽하지 않은 나를 드러냈을 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을 안고 산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결점과 약점을 감추고, 세상에 괜찮은 사람인 척,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척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알다시피 이'척'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스스로의 본질과 멀어진 삶은 결국 피로와 무기력, 불안으로 되돌아온다.

이와 같은 심리는 특히 SNS의 보편화와 함께 더욱 강화되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타인의 삶을 훔쳐보고 비교하며 스스로를 평가한다. '좋아요' 개수, 댓글 반응, 스토리의 조회 수가 곧 자기 존재의 척도가 되어버린 시대다. 끊임없는 노출과 비교 속에서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나'가 아닌, '보여지는 나'를 꾸미기에 급급해졌고, 그렇게 가면은 점점 무거워졌다.

 

 

 

 

뇌는 사회적 생존을 가장 먼저 배운다


인간은 원래 혼자서 살아가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하는 일은 누군가와 눈을 맞추는 일이고, 가장 먼저 이해하는 감정은 바로 '연결감'이다.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은 그의 저서'브레인'에서 '뇌는 끊임없이 사회적 단서를 분석하고, 타인의 반응을 예측하며,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정의한다.'고 설명한다. 즉, 타인의 인정이 단순한 감정적 욕구가 아닌, 생존과 직결된 뇌의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뇌는 안전을 추구하는 기관이다. 그리고 이 안전은 '소속감'이라는 감정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집단 속에 속해 있을 때 생존 가능성이 높았다. 소외되거나 거부당하는 것은 곧 위험과 연결되었고, 이는 곧바로 불안과 공포로 이어졌다. 이렇듯 타인의 시선과 평가는 뇌에게는 '생존 신호'나 다름없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타인의 인정에 반응하고, 이를 잃을까 봐 불안해한다.

이글먼은 또 하나 중요한 점을 짚는다. 뇌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끊임없이 비교하고, 판단하여, 타인의 평가를 통해 '자기 가치'를 재정의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사회적 비교'가 뇌의 자동 작동 루틴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SNS를 끊거나 비교하지 않으려 애써도, 뇌는 여전히 데이터를 수집하고 반응한다. 이 반응이 누적되면, 결국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과 무력감을 키우게 된다. 

이러한 뇌의 성향을 알게 되면, 타인의 인정에 대한 불안이 '내가 약해서' 생긴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은 나의 뇌가, 내가 인간이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문제는 이 메커니즘을 모른 채 끌려다니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 자유롭기 위해서는, 이 본능을 인정하되 거기에 휘둘리지 않는 힘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내 뇌가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를 알고, 그 흐름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진짜 나로 존재하기 위한 용기


타인의 인정이 없으면 불안한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면의 확신이 없을수록 우리는 외부의 평가에 더 민감해지고, 결국 타인의 시선이 나를 대신 정의하게 만든다. 브레네 브라운은 이를 '자기 연민'의 결핍이라고 했다. 스스로를 따듯하게 바라보지 못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의 애정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 든다. 그렇기에 불안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문제다.

진짜 나로 존재하기 위해선 먼저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불안함을 느끼는가? 그 불안은 누구의 시선에서 비롯되었는가?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을 진지하게 던져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을 외부에서 찾기보다, 내 안에서 하나씩 끄집어내야 한다. 그것은 때로 고통스럽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회복의 시작이 된다. 

칼 융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지 않게 된다'라고 했다. 이것은 완전한 무관심이나 고립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과 더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기 위한 준비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나를 이해하는 만큼, 타인도 이해할 수 있게 되며, 그렇게 관계는 깊어진다.

SNS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하는 일은 역설적으로 더 큰 용기를 요구한다. '꾸미지 않은 나'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은, 곧 수많은 비교와 판단에 맞서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는, 타인의 인정이 아닌 자기 확신에서 비롯된 평온함이 있다. 그리고 이 평온함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이며, 불안으로부터의 해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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