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일과 삶 사이, 나를 잃지 않는 법

by 꼰대가랬숑 2025. 4. 25.
반응형

일과 삶 사이, 나를 잃지 않는 법

 

성과가 삶의 기준이 된 시대, 우리는 왜 항상 피곤할까?

성과 중심주의가 만드는 심리적 피로와 그 해결법을 알아보자.

작은 균형에서 진짜 나를 되찾는 행동이 필요하다.

 

 

바쁘다는 말이 일상이 된 사람들


'요즘 어떻게 지내?'

'바빠'

이 짧은 대화 속에 현대인의 일상 속 모든 모습들이 담겨져 있다. 우리는 마치 '바쁘다'는 말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고 애쓴다. 이 바쁨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신호이고, 곧 무기력하지 않다는 증거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정작 그 바쁨이 끝난 뒤 남는 건 기쁨보단 피로, 충만함보다는 허무함일 것이다.

한국인의 평균 노동 시간은 OECD 국가 중 상위권에 속한다. 퇴근 후에도 업무 메신저는 멈추지 않고, 주말에도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시간은 끊임없이 일로 채워지고, 어느 순간 우리는 일하는 기계처럼 살아간다. 여유는 사치고, 쉼은 게으름처럼 느껴진다. 이 속도와 경쟁의 흐름에서 뒤처지면, 낙오자가 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성과 중심의 사회는 개인을 소비재처럼 다루게 된다'고 지적한다. 이 말은 단지 직장 내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의 태도 전체를 관통하는 지점이다. 일이 삶의 중심이 되면서, 우리는 인간관계, 건강, 감정까지 모두 '일의 효율성' 아래 두기 시작한다. 심지어 친구를 만나는 시간도, 혼자 산책하는 시간도 '생산적인가'라는 기준으로 판단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바쁘게 사는 것이 곧 '좋은 인생'이라고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에 몰두하며 성공을 향해 달리는 모습은 멋져 보이지만, 그 안에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많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 잠들 때까지 끊임없이 일에 쫓기며, 나의 감정, 관계, 몸의 신호는 무시된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탈진과 번아웃은 찾아온다. 

워라밸을 찾아 노심초사하지만 실제로 이를 실천하며 사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마음속으로는 균형을 원하지만, 현실은 일을 줄이면 불아해 지고, 쉬는 시간이 늘어나면 죄책감을 느낀다. 이는 단지 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부추기는 인식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압박, 쉼을 허락하지 않는 문화, 스스로를 혹사하며 얻는 찰나의 인정은 결코 지속 가능한 삶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무엇을 얼마나 더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자문해야 한다. 삶의 가치는 단지 성과로만 측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멈추고, 쉼을 선택할 때 더 명확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쁘다는 말 뒤에 감춰진 피로와 외로움을 애써 감추고 있진 않은가? 

쉼은 게으름이 아니다. 그것은 회복이고, 자신에 대한 존중이다. 잠시 멈춰,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되묻는 시간이 필요하다. 일은 삶의 일부일 뿐, 전부가 아니다.

 

 

 

내 삶을 잠식하는 '성과 중심주의'


'성과를 내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능력'있는 사람이 된다.

이것은 삶 전체를 지배하는 신념처럼 되어 버렸다. 초등생시절엔 성적표에 적힘 점수로, 청소년기에는 대학이름으로, 청년기에는 이력서에 적힌 스펙으로, 성인이 되어서는 매출과 실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측정받는다. 우리는 언제부터 인간이 아니라 성과라는 무형의 수치로 살아가게 된 걸까?

성과 중심주의는 개인의 존재 자체보다 '결과'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과정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숫자다. 목표 대비 달성률, 분기 실적, 프로젝트 성과. 이 숫자들이 곧 '인정'이자 '존재의 의미'가 되는 구조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조차 휴식을 허락하지 못한다. 쉬는 시간은 곧 성과 없는 시간이고, 무의미한 시간으로 인식된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심리적 현상 중 하나는 '성과 강박'이다. 독일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성과에 중독된 사회는 결국 인간을 기능화한다'고 경고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보다 '잘하는 일'을 선택하고, 그 '잘하는 일'이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좌절한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를 '성공 기계'로 만드는 동시에, 실패에 취약한 인간으로 조각해 간다.

성과 중심중의는 감정의 마비를 유도한다. 힘들어도 티를 낼 수 없고, 아파도 쉬지 못한다. 대신 '괜찮다, 할 수 있다'로 버티며 일상을 지속해 나간다. 이런 태도는 신경계에 지속적인 긴장을 유발하고, 만성 피로의 한 원인이 된다. 실제로 하버드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성과 압박을 받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코르티솔 수치가 평균 30%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코르티솔은 면역기능 저하를 일으키는 물질이다)

이런 삶은 결국 '지속 가능성'을 해친다. 일의 성과는 일시적일 수 있지만, 탈진은 장기적이다. 자기 효능감은 점점 떨어지고, 소진(burnout)은 반복된다. 문제는 성과 중심주의가 외부로부터 주입된 신념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는데, 사회는 늘 더 빨리, 더 많이, 더 잘하라고 요구한다. 그 결과, 우리는 너무도 피로하며 이 피로는 우리의 존재에 대한 회의로 이어진다.

우리 삶이 성과에만 집중된 지금, 정말 중요한 것은 묻혀버린다. 나라는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감동하며, 어떤 순간에 웃는가? 우리는 자신을 성과의 척도로만 평가하면서 스스로를 잃어간다.

우리는 이제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보다는 먼저 '나는 누구이고, 무엇이 나를 살아 있게 하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나를 찾는 법: 균형을 위한 작은 행동


우리는 당장 삶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성과 중심주의에 익숙해진 우리는 종종 생각한다. '지금 이 일만 끝나면 쉴 수 있어' 하지만 그 '지금'은 끝나지 않는다. 목표는 더 커지고, 해야 할 일은 늘어나며, 휴식은 늘 미뤄진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누구였는지조차 잊게 된다. 바로 지금, 우리는 '삶의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우선 '쉬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건 단순히 물리적인 휴식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정 상태에 도달하는 것. 하버드 의대 마인드풀니스 연구소매일 단 10분이라도 의식적인 정적을 갖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가 크게 줄고, 뇌의 감정 조절 기능이 활성화된다고 밝혔다.

침묵, 명상, 산책 등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나를 위한 공간'을 일상 속에 되찾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건 '비성과적 활동'이다. 성과와 상관없이 나를 기쁘게 하는 일, 좋아서 하는 일, 잘하지 않아도 계속하고 싶은 일.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악기를 배우거나, 그냥 책상 앞에서 하루를 멍하니 보내는 것조차도 괜찮다. 이런 활동들은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을 되살린다.

독일 철학자 한병철은'피로 사회'에서 현대인은 스스로를 착취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우리는 더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을 몰아붙인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그것은 나를 쉬게 할 줄 아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자신에게 '지금의 나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균형을 위한 실천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출근 전 10분의 조용한 음악 듣기, 점심시간 중 휴대폰 없이 산책하기, 퇴근 후 '오늘의 감정'을 짧게 기록하는 일기. 이런 작은 루틴들이 쌓이면, 어느 순간 삶의 리듬이 달라진다. 타인의 기대나 사회적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으로 하루를 평가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관계의 온도'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과도한 성과주의는 종종 사람을 수단화한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처럼 사람을 대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외로움은 커져간다. 하지만 우리는 관계 안에서 치유받는다. 좋은 말 한마디, 진심 어린 공감 하나가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우기도 한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하루의 피로가 사라지는 겅험, 우리 모두 해본 적 있지 않는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기계처럼 일하지만, 기계처럼 살 순 없다. 때로는 느려도 괜찮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고, 실패해도 여전히 괜찮다. 삶은 성과로 성공으로 측정되는 게 아니라, 경험으로 채워지는 것이니까. '오늘 하루를 잘 버텼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의미 있는 존재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성과 대신 감정을, 숫자 대신 나를, 비교 대신 회복을 선택해 보자. 그렇게 작은 균형이 반복되면, 언젠가 우리는 다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나를 모른다” 데이비드 이글먼 'Incognito'가 알려주는 무의식의 비밀

'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데이비드 이글먼 'Incognito'는 우리가 모르는 무의식의 세계를 흥미롭고 과학적으로 풀어낸다.자아에 대한 착각을 깨고,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매우 갑진

moneyfinder.tistory.com

 

 

 

나는 왜 아무것도 안했는데도 피곤할까?

물리적으로는 푹 쉰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피곤한 걸까?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지친 당신에게, 그 진짜 이유를 알려 주려 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몸과 마음이 무거운 날하루를 아무 일도

kkondaego.tistory.com

 

 

왜 우리는 타인의 인정 없이는 불안할까?

사람은 본능적으로 사회적 존재다. 생존을 위해 소속감을 필요로 하고, 뇌는 끊임없이 타인의 반응을 감지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평가한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현대 사회에서 sns와 결합되며

kkondaego.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