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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DNA러버가 본 한국인의 민원DNA

by 꼰대가랬숑 2024.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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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기록원, 내용출처 : 경향신문 , 1967.01.06., 3 면 : 1967 년 1 월 6 일 , 서울시가 새해부터 시작한 야간시청업무가 시작되어 밤 10 시까지 민원업무를 보도록 했다

 

한국인 DNA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특별함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상식적이지 않은 많은 행동 특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민원'이라는 행위를 통해 본 한국인의 특별한 기질이 지금의 한국을 만들어 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한국인


얼마 전 본 드라마 중 'DNA러버'라는 시리즈물이 있었다. 여주는 상대 DNA 분석을 통해 바람둥이 유전자를 가진 남자를 피해 완벽한 유전적 결속을 위해 분투하며 벌어지는 여러 상황을 재미있게 엮어낸 로맨스물이다.

연구원인 여주인공에게 바람둥이 유전자는 실체가 있는 팩트였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민원 DNA는 사실 발견 할 수 없는 실체가 없는 유전형질이다. 그러나 또 없다고 보기엔 너무나 빈번하게 목격되고 발견된다. 얼마 전 벌어진 안타까운 많은 죽음을 보며 국민들은 분노했다. 이태원 좁은 골목 안에서 150여 명이 넘는 아까운 생명이 스러졌을 때, 우리는 모두 분노했고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를 위해 목청을 높였다. 태안 앞바다에 유조선이 침몰했을 때는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름때를 닦으며 철저한 사고 조사와 재발 방지, 보상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대구지하철 사고 때도, 더 이전에 IMF때도 우리는 그 일이 왜 발생했고, 왜 대비하지 않았고, 앞으로 어떻게 개선되어 가는지 두 눈 부릅뜨고 바라봤다. 기대치에 부흥하지 않을 때는 국민신문고 민원, 정부 24 민원서비스, 민원 24, 안전운전통합민원, 법무부 온라인민원서비스 등 수많은 정부 기관 민원 서비스에 가차 없는 민원 세례를 퍼붓는다. 

 

그런 연유로 공무원들은 민원을 가장 힘들어한다. 어떤 이들은 별것도 아닌 일로 민원을 넣는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민원이라는 행정적 절차는 국민 참여의 한 형태이자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는 한국인만의 기질을 대변한다 할 수 있다.  서울시의 하루 민원 접수 건 수는 약 8,800여 회다. 이를 월간 횟수로 곱하면 한 달에 264,000건에 달한다. 2022년 기준 연간 민원 접수 건 수는 약 238만 건이다. 서울인구를 1,500만 명으로 볼 때 서울 인구의 약 16%는 매년 민원이라는 행위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한국인들의 기질을 
좋아한다

 

민원 통계

응답소에서 처리하는 민원의 접수현황과, 신청방법별 / 분야별 / 처리기관별 통계를 연단위로 표와 그래프를 통해 제공

eungdapso.seoul.go.kr

 

 

 

 

조선왕의 민주적 민원해결법 '순문'


조선의 왕들이 백성들의 의견을 듣는 것을 '순문'이라고 했다.

순문은 왕이 직접 신하들의 의견을 묻는 과정이었으나, 영조는 이 대상을 백성들까지 확대하였다. 그는 중요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 백성들과 만나 의견을 청취하였고, 이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여론 정치가 펼쳐졌다. 예를 들어, 세종 때는 공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18만 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여 의견을 수렴했으나, 세종은 직접 백성을 만나지는 않았다고 한다. 

영조는 왕의 능행길에서 백성들에게 농사 상황을 물어보기도 했으며, 지방관들을 불러올 때는 그 지역 백성을 동반하게 하여 실질적인 현지 사정을 확인했다. 한양 백성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경청했다 하고, 집권 후반기에는 정기적으로 백성들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 초기에는 지방을 순행하면서 직접 백성을 만났지만, 나중에는 궁의 정문이나 중문에서 주로 백성을 맞이했다. 이는 왕이 백성들과의 거리를 더욱 좁히려는 의지로 해석된다.

정책 결정 시, 영조는 여러 차례 순문을 통해 여론을 확인했다. 예를 들어, 균역법을 제정할 때, 영조는 세 차례에 걸쳐 궁궐 문 밖으로 나가 백성들의 의견을 들었다. 1750년, 영조는 창경궁 홍화문에서 백성들을 만나 양역의 폐단을 논의하며, 호포와 결포의 장단점을 물었다 한다. 대부분의 백성들은 호포가 더 나은 방안이라고 답했고, 일부는 결포가 더 낫다고 했다. 이후 영조는 다시 백성들과 유생들을 만나 의견을 듣고, 최종적으로 호전을 도입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이렇듯 조선시대의 왕들은 백성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묻고 자신의 정책에 반영하였다. 

 

'민심은 천심이다'
들으려 하지 않는 다면 듣게 해야 한다


 

신문고, 상언, 격쟁


지금은 있으나마나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국왕이 직접 백성들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해결하는 제도가 있었다. 오늘날 유명무실한 국민신고와 비슷한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신문고이다.

 

신문고는 태종 때 처음 도입되었으며,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들이 의금부에 설치된 북을 두드리면 민원이 접수되었다. 이 민원은 왕에게 보고된 후 처리 방안이 결정되었고, 담당 관리가 5일 이내에 결과를 보고해야 했다. 그러나 신문고를 칠 수 있는 조건이 제한적이었으며, 지방에 사는 백성들이 민원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지방관, 사헌부 등을 차례로 거쳐야 했기 때문에 절차가 복잡했다 한다. 

 

상언과 격쟁은 신문고보다 좀 더 효과적인 민원 제도였다.

상언은 백성이 왕에게 직접 글을 올리는 방식이었고, 격쟁은 국왕이 행차 중일 때나 궁궐 앞에서 징, 꽹과리 등을 쳐 억울함을 호소하는 방법이었다. 사언과 격쟁은 접수된 후 3일 이내에 국왕에게 보고되었다. 상언은 승정원이 문서를 받아 왕에게 보고했고, 격쟁은 먼저 병조나 고훤랑이 격쟁인에게 형벌을 가한 후, 해당 사안을 형조에 넘겨 국왕에게 보고 했다.

이 두 방식은 신문고의 역할을 대신했지만, 신고할 수 있는 사안은 제한적이었다. 예를 들어, 형벌이나 부자 관계, 신문 문제 등과 같은 특정 주제에만 적용되었고, 반드시 본인이 직접 신고해야 했다. 조선 후기에는 상언과 격쟁이 점점 더 활성화되었으며, 숙종 때에는 가족 구성원 간에도 대신 상언이나 격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민원 제기 숫자가 급증했고, 영조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창덕궁과 경희궁에 새로운 신문고를 설치해 궁궐 내 격쟁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정조는 다시 행차 길에서의 격쟁을 허용하며 백성들의 억울한 사연을 직접 듣는 정책을 유지했다. 

 

 

 

 

민원은 양날의 검


오히려 조선시대에는 절차는 까다롭지만 왕과 대면하며 불편함을 호소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SNS와 온라인 네트워크로 전 국민이 연결된 21세기에 사는 우리 조차 근황도 알 수 없는 왕을 만나는 어려운 일을 조선시대에서는 하지 않았는가? 시대가 변하고 개인의 욕구가 바뀌는 환경 안에서 민원은 개인의 권리와 재산을 지키는 수단으로 변질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오랫동안 사용하던 골목길을 막고 통행료를 징수하며 근거를 남기기 위해 먼저 선수 쳐 민원을 넣기도 하고, 새로 짓는 건물의 높이가 높아 해를 막는다는 민원을 수차례 넣어 고의적으로 공사를 방해하기도 한다. 

민원에 시달리다 못한 어느 공무원은 죽음으로 그 고통을 벗어나기도 했다. 개인주의 시대에서 민원은 그저 내 재산을 불리고 내 불편을 해결하는 데 사용되는 개인적 사유물로 전락해 버린 듯도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꺼진 가로등을 보며 민원을 남기고, 좁은 골목길 불법 주차를 신고하며, 신호를 어기며 종횡무진 달리는 배달 오토바이들을 눈여겨본다. 택시 기사는 불법 피싱 피해를 의심해 생계를 뒤로하고 신고를 하기도 한다. 이렇듯 한국인은 눈 앞에 있는 그 불편함과 불안함을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비합리성을 바꾸려는 더 많은 정의로운 눈들이 있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뭐든 불완전한 것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 사람들
그것이 내가 아는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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